복제 인간의 운명과 인간의 가치, 영화 미키 17 리뷰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1억 5천만 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개봉했습니다. 로튼 토마토 88%, 메타스코어 75점이라는 평단의 우호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한 이질감과 동시에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복제 인간이라는 SF 설정을 빌려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한 이 작품은, 어쩌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 속 감춰진 풍자의 칼날

'미키 17'의 핵심 설정은 익스팬더블(Expendable)이라는 소모품 인간입니다. 익스팬더블이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즉시 복제되어 다시 투입되는 일회용 인력을 뜻하는데요, 영화는 이 설정을 통해 노동자가 얼마나 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미키 반즈는 빚을 피해 우주 식민지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사실상 자신의 인격을 포기합니다. 죽을 때마다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되고 백업된 기억을 이식받지만, 그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무성의합니다.

저는 예전에 어떤 조직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일이 잘되면 조직의 성과로,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저 역시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미키가 프린트되는 장면은 그런 제 경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케이블이 발에 걸리고 신체가 바닥에 그냥 떨어지는 장면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무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냉소적 풍자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원작 소설 '미키 7'을 대담하게 각색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익스팬더블이 이미 인격체로 인정받지만, 영화에서는 아예 인격체 자체를 부정하는 구조로 바꿨습니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영화가 단순히 복제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각색이 SF 장르가 가진 철학적 깊이를 희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봉준호만의 색깔을 더 명확히 드러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재자 마샬과 허울뿐인 권력 구조

영화에서 가장 통렬하게 풍자되는 인물은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케네스 마샬입니다. 전 국회의원이라는 경력을 가진 이 독재자는 '우월한 인간'으로 구성된 '순백의 행성'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우월한 인간'이 무엇인지 정의조차 못 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토착 생명체 크리퍼가 존재하는 행성을 백지 상태라고 착각할 정도로 기초 과학 지식도 부족합니다.

마샬의 캐릭터는 과장되어 보이지만, 사실 현실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많습니다. 성분도 모르는 남색 약물을 우주선에 퍼뜨리거나, 가임기 여성의 죽음에 호들갑을 떨며 우생학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은 권력자의 무지와 편견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배우자 일파를 함께 배치한 점입니다. 토니 콜레트가 연기한 일파는 체제 선전에 동원되는 장식품이자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인물로, 독재자 옆의 전형적인 무감각한 조력자를 보여줍니다.

  1. 마샬은 칼로리 절약을 명목으로 성행위 전면 금지법을 시행합니다
  2. 과학적 근거 없이 기념비 건설을 지시하며 자원을 낭비합니다
  3. 우성 인자 운운하며 여성을 자궁으로만 취급하는 발언을 일삼습니다

이런 독재자를 전복시키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권력 구조를 허술하게 만들어놨는데요,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메시지를 강화한다고 봤습니다. 권위주의 체제란 실제로는 그렇게 견고하지 않으며, 공통의 합의만 있다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 관객들은 이런 전개가 너무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계급비판이라는 익숙한 테마의 재발견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와 '기생충'에서 이미 계급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미키 세븐틴' 역시 이 테마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뭐가 와도 결국 계층 비판으로 수렴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저 역시 처음엔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 다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주라는 SF적 배경 속에서도 결국 인간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계급 구조를 드러냅니다. 캐서린 조지가 디자인한 의상은 노동복처럼 단색이고, 피오나 크롬비가 만든 우주선 세트는 탄광을 연상시킵니다. 미키가 일하는 행성 아래는 영락없는 갱도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시각적 장치들은 우주 개척이라는 미래적 설정 속에서도 여전히 노동자들이 지하에서 착취당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과거에 조직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건, 시스템이 사람을 숫자나 도구처럼 취급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과 태도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속 미키가 끊임없이 죽고 복제되면서도 결국 자신이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그런 제 경험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특히 미키가 크리퍼에게 폭탄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억압받는 존재들끼리의 연대가 어떻게 권력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진 한계도 분명합니다. 복제 인간(Multiples)이라는 설정이 가진 철학적 가능성,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기억이 같은 존재는 같은 인간인가' 같은 실존적 질문들이 충분히 탐구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이런 질문들보다는 사회 구조 비판으로 빠르게 방향을 잡는데, 일부 SF 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뛰어난 배우가 연기한 미키 세븐틴과 미키 에이틴의 성격 차이가 좀 더 두드러졌다면, 영화의 깊이가 한층 더 확장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미키 17'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1억 5천만 달러라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이처럼 노골적인 사회 풍자를 시도했다는 점 자체가 의미 있는 도전입니다. 코로나 이후 위험을 기피하며 속편만 찍어대는 할리우드에서, 이런 독창적인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할리우드는 다시 안전한 길만 걷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북미 관객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VSz3-J2c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