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서 더 낯선 가족 이야기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믿지만, 제 경험상 오히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일 때가 많았습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40년 가까이 뉴욕 인디 영화의 건조한 유머와 정지에 가까운 관찰을 밀어붙여온 자무쉬가 이번에는 가족이라는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낯선 주제를 삼부작 옴니버스로 풀어냈습니다.
옴니버스 구조로 본 세 가지 가족의 모습
이 영화는 '아버지', '어머니', '남매'라는 제목의 독립된 세 부로 구성되면서도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구조를 취합니다. 옴니버스(Omnibus)란 여러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은 형식을 뜻하는데, 자무쉬는 '미스터리 트레인', '지상의 밤', '커피와 담배' 등에서도 이 방식을 즐겨 사용해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세 개의 서로 다른 가족 이야기가 각각 미국 뉴저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요. 제1부에서는 남매가 시골에 사는 아버지를 방문하고, 제2부에서는 자매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어머니를 찾아가며, 제3부에서는 쌍둥이 남매가 사망한 부모의 집을 정리하러 갑니다.
각 부의 부모들은 음악을 하는 듯한 자유로운 영혼들로 그려지지만 직업이 분명치 않고, 사회 규범과 돈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 직업이 섞인 이질적인 서사를 통해 감독은 특정 가족이 아닌 모든 가족의 보편적 초상을 포착하려는 듯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의 생각이나 행동을 어느 정도 안다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제가 모르는 과거와 고민이 있고, 형제자매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전혀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관계 속 숨겨진 거리감과 어색함
제1부 '아버지'에서 톰 웨이츠가 연기한 아버지는 가난한 척, 무능한 척 연기합니다. 롤렉스 시계를 차고도 짝퉁이라고 거짓말하고, 좋은 차를 숨겨두고 낡은 차만 보여주는 인물이죠. 오랜만에 온 자식들에게 물만 대접하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에서,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보다 자신을 도와줄 '관계'가 더 중요한 듯 보입니다. 반면 남매인 에밀리와 제프는 이를 알아보면서도 추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 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존심과 이용의 미묘한 줄다리기입니다.
제2부 '어머니'에서는 샬롯 램플링이 연기한 품위 있는 중산층 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는 두 딸의 만남이 펼쳐집니다. 램플링의 60년간 무르익은 연기는 단호함과 품위, 자유로움을 동시에 표현해냈는데요.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의도된 어색함으로 가득합니다. 연례 행사처럼 만나 차를 마시고 다시 떠나는 두 딸과, 문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7분 동안 세 사람이 시계만 보며 "몇 분 남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친하지 않은 남들보다 더 어색한 이 분위기는, 예의와 질서 안에서 진심을 감추는 가족 관계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특히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저는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곤 합니다. 서로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어색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건드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질 때도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반복되는 상징과 절제된 연출의 힘
자무쉬는 세 부를 연결하는 장치로 몇 가지 반복되는 오브제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농담 '밥스 유어 엉클(Bob's your uncle)'입니다. 이 표현은 "식은 죽 먹기지?" 또는 "어때? 이만하면 됐지?" 같은 뉘앙스를 담은 구어체인데요. 제1, 2부에서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농담을 건네지만 자녀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제1부의 남매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고, 제2부의 자매는 예의상 웃어넘깁니다. 이 농담은 대화가 너무 진지해지려는 순간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제3부에서는 쌍둥이 남매가 동시에 이 농담을 말합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친밀감을 강화하고 정서의 온도를 높이는 장치로 기능하는 겁니다.
롤렉스 손목시계도 반복 등장합니다. 제1부에서는 아버지가 진품을 차고도 자녀들에게 짝퉁이라고 속이고, 제2부에서는 작은 딸이 찬 진짜 짝퉁으로 허세와 실제 형편을 드러냅니다. 제3부에서는 유품으로 등장하며 진품 여부와는 무관하게 기억의 매개체가 됩니다. 또한 세 부의 처음에 등장하는 스케이트보드 타는 아이들은 각기 다른 가족 이야기를 연결하는 시각적 고리 역할을 합니다. 위태위태하지만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스케이트보드의 움직임은, 파괴되고 해체된 듯 보이면서도 끈끈하게 유지되는 가족 관계의 은유처럼 느껴집니다.
- 영국 농담 '밥스 유어 엉클': 대화의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로 각 부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
- 롤렉스 손목시계: 진품과 짝퉁, 유품으로 변주되며 감춤과 드러냄을 상징
- 스케이트보드 타는 장면: 위태로우면서도 지속되는 가족 관계의 시각적 은유
절제가 만들어낸 진짜 가족의 얼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일반적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해외 주요 전문지에서는 호평이 이어졌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너무 가볍고 여리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온라인 영화 비평지 인뷰 온라인에서 로젠버그는 "아주 미세한 접촉에도 금이 가버리는 영화"라고 신랄하게 평가했죠. 제1, 2부가 지나치게 밋밋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바로 그 절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짐 자무쉬의 영화는 언제나 이야기보다 분위기와 관찰에 더 집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보다는 인물 사이의 미묘한 거리와 침묵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데요. 드라메디(Dramedy)란 드라마(Drama)와 코미디(Comedy)를 결합한 장르를 뜻하며, 이 영화는 바로 그 경계를 절묘하게 오갑니다. 가족 관계는 항상 극적인 사건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하지 못한 감정, 어색한 침묵, 사소한 농담 속에서 더 많은 의미가 드러날 때가 있죠.
비인디펜던트지의 마틴은 "침묵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평가했고, 독일 키노짜이트의 블리거는 "때로 가장 작은 영화가 가장 큰 균열을 남긴다"고 적극 옹호했습니다. 제3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이론의 여지 없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부모가 없는 공간 속에서 남매가 기억을 통해 가족을 이해해 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가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기억 속에서 관계를 이어 간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죠.
이 영화는 가족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보통 가족 영화는 화해를 서사로 만들고 눈물을 증거로 요구하지만, 자무쉬는 그 반대로 갑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식탁에 그대로 남아 있는 풍경, 농담이 진심을 가리는 순간, 서로를 아끼면서도 끝내 다가서지 못하는 거리. 그 애매함이 바로 많은 가족의 실제 모습이니까요. 솔직히 제게 이 영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까워서 오히려 낯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조용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XTLZb-14EI